“규제 최소화의 역설”… 기업 부담 가중 우려
AI부동산경제신문 | 교육·문화
[서울=이진형 기자] 정부가 AI 산업 진흥을 목표로 추진 중인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이하 인공지능기본법)」이 정작 AI 기술의 생애주기 구조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법적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학계의 지적이 나왔다.
규제 강도를 낮추는 데만 집중한 나머지 ‘규제 대상’과 ‘책임 구조’가 불명확하게 설계되어, 장기적으로는 국내 기업에 국제 규제 비정합성과 법적 리스크라는 ‘역설적 부담’을 안길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내용은 대한변호사협회가 제공하는 인권과 정의에 게재된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박노형 명예교수의 논문 「한국 인공지능기본법의 규제 대상 불일치와 규제 최소화의 역설: EU AI법과의 비교를 중심으로」를 통해 제시됐다.
AI 위험의 ‘이중 구조’ 놓친 현행 기본법

논문은 AI 기술이 상류(Upstream)의 모델 훈련과 하류(Downstream)의 시스템 운용이라는 긴밀한 사슬 구조를 가진다고 분석한다.
AI의 위험 역시 특정 시점의 단발성 사건이 아니라 데이터 수집 및 모델 훈련 단계에서 ‘구조적으로 형성’된 후, 최종 시스템 운용 과정에서 ‘현실화’되는 이중 구조를 띤다.
유럽연합(EU)의 ‘EU AI법’은 이러한 기술적 생애주기를 반영해 범용 AI 모델과 고위험 AI 시스템을 명확히 구별하고, 개발자(제공자)와 실제 업무에 쓰는 운용자(병원, 금융기관, 공공기관 등)의 책임을 다층적으로 배분했다.
반면, 한국의 인공지능기본법은 위험이 현실화되는 ‘시스템’ 단계에만 규제를 집중하고, 위험의 근본 원인이 형성되는 ‘모델’ 및 ‘훈련’ 단계는 독립적 규제 대상에서 배제한 채 법적 구속력이 없는 가이드라인에 의존하고 있다.
“규제 최소화의 역설”… 기업 부담 가중 우려
박 교수는 현행 법체계가 가져올 핵심 문제로 ‘책임의 비대칭성’과 ‘법적 예측 가능성 저하’를 꼽았다.
모델 단계에서 형성된 편향이나 저작권 침해 등의 위험을 선제적으로 통제하지 않으면, 그 책임이 하류 단계의 시스템 사업자에게 부당하게 집중되는 결과가 초래된다.
또한, 병원·금융기관 등 조직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AI를 사용하는 주체(운용자)의 관리·감독 책임이 체계화되지 않아 규제의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더욱이 EU AI법은 역외 적용 규정을 두고 있어 EU 시장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은 어차피 글로벌 수준의 모델·시스템 분리 규제를 준수해야 한다.
국내법이 글로벌 규범과 겉돌 경우, 국내 기업은 국내외에서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받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규제 완화'라는 입법 취지가 도리어 '예측 불가능한 규제 환경'이라는 역설로 이어지는 셈이다.
“단순 규제 강화 아닌 ‘생애주기 기반 거버넌스’로 개정해야”
논문은 인공지능기본법이 실질적인 AI 거버넌스 법제로 기능하기 위해 구조적인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생애주기 기반 규율 전환: 모델은 모델 단계, 시스템은 시스템 단계에서 각각 규율하고, 훈련과 학습을 분리하여 위험 형성·전이·현실화에 맞춘 책임 배분
체계적 장(章) 신설: 모델에 관한 독립된 조항 및 AI 운용자의 책임을 다루는 책임 중심 규정 마련
거버넌스 체계 정비: 기본법은 기본 원칙과 거버넌스 중심으로 정비하고, 산업 진흥과 위험 규제 영역을 명확히 구분
박 교수는 “인공지능기본법 평가의 핵심은 단순한 규제의 강약이 아니라, 규제 대상과 책임 구조의 정합성 및 예측 가능성”이라며 “글로벌 기준과 정합적인 생애주기 거버넌스로 전환해야만 국내 기업의 글로벌 신뢰 경쟁력을 뒷받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논문 출처 정보]
논문명: 한국 인공지능기본법의 규제 대상 불일치와 규제 최소화의 역설: EU AI법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저자: 박노형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법학박사)
학술지 출처: KCI 등재지 (발행기관: 대한변호사협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