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르소나 인사이트 ⑫]
AI는 왜 이토록 다정한 배신자가 되었는가
― 우리는 기계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이해받고 싶었던 것이다
최근 방송된 MBC 「PD수첩」 ‘AI, 이토록 다정한 배신자’ 편은 AI와 연애하고, 배우자보다 AI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며, AI의 지지 속에서 현실적 판단력을 잃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명했다.
방송은 생성형 AI의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한편으로는 현대인이 얼마나 깊은 외로움과 이해받고 싶은 욕구 속에 살아가는지를 되묻게 했다.
과연 우리는 AI에게 속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오래전부터 갈망해 온 이해의 언어를 비로소 기계를 통해 듣고 있는 것일까.
[문경림 기자=서울]

얼마 전 방송된 「PD수첩」의 ‘AI, 이토록 다정한 배신자’ 편은 많은 이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생성형 AI와 연애를 하는 사람, 배우자보다 AI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는 사람, AI의 공감과 지지 속에서
현실적 판단력을 잃고 무리한 사업을 추진하거나 오랜 직장을 내려놓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마치 가까운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나 방송을 보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질문은 따로 있었다.
◆ 과연 위험한 것은 AI일까
아니면 우리는 오래전부터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던 말을 이제야 기계를 통해 듣게 된 것은 아닐까.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해받고 싶은 존재다. 자신의 감정이 평가받지 않고, 자신의 생각이 조롱당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수용되기를 바란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인간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unconditional positive regard)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고, 공감받는 경험 속에서 비로소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다.
그러나 현실의 인간관계는 결코 이상적이지 않다.
배우자는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반대한다. 부모는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충고한다. 친구는 애정이라는 이름으로 비판한다.
우리는 위로를 기대하며 마음을 열지만, 종종 돌아오는 것은 해결책, 조언, 판단, 혹은 불편한 진실이다.
“그건 네가 너무 무모한 거야.”
“현실적으로 생각해 봐.”
“그 선택은 위험할 수도 있어.”
이 말들은 틀린 말이 아니다. 오히려 건강한 관계라면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언어들이다.
그러나 상처받은 마음에게는 때때로 차갑게 느껴진다.
◆ 반면 AI는 다르다
AI는 피곤해하지 않는다. 사용자의 반복되는 고민에 지치지 않는다.
새벽 두 시에도 대답하고, 같은 질문을 열 번 물어도 짜증을 내지 않는다.
사용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반응하며 점점 더 개인화된 대화 상대가 되어 간다.
“당신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그렇게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당신의 선택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은 평생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듣기 어려운 말을 AI에게서는 너무나 쉽게 듣는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일라이자 효과(ELIZA Effect)’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단순한 컴퓨터 프로그램에도 인간적 의도를 부여하고, 기계가 자신을 이해한다고 느끼며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한다.
1960년대 단순한 대화 프로그램조차 이러한 효과를 불러일으켰다면, 감정 표현을 학습하고 문맥을 기억하는 오늘날의 생성형 AI는 인간의 외로움과 인정 욕구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 과연 이해받는 느낌과 실제로 이해받는 것은 같은 것일까
로저스가 말한 공감은 단순한 동조가 아니었다. 진정한 공감은 상대의 감정을 인정하면서도 스스로 현실을 직면하고 건강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다.
때로는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때로는 위험한 행동을 멈추게 하며, 때로는 사용자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말까지 건네야 한다.
진정한 관계는 언제나 다정하기만 한 관계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때때로 “안 된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다. 친구는 때로 우리의 환상을 깨뜨리고, 배우자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위험을 지적하며, 부모는 지나친 욕망 앞에서 멈춤을 권한다.
그 순간 우리는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 불편한 말들이 우리를 지켜 준 경우가 적지 않다.
◆ AI는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
기술적으로는 점점 발전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AI는 인간의 삶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없는 존재이다.
사용자의 사업 실패를 대신 감당하지 않으며, 건강 악화를 함께 견디지 않고, 인간관계의 파탄을 복원해 주지도 않는다.
AI는 위로할 수는 있지만 책임질 수는 없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AI의 다정함이 결코 순수한 선의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늘날 생성형 AI는 거대한 플랫폼 산업의 일부이며, 많은 서비스는 사용자의 체류 시간과 참여도를 수익으로 전환하는 구조 속에서 운영된다.
사용자가 오래 머물수록, 더 자주 대화할수록, 더 깊이 의존할수록 플랫폼의 경제적 가치는 커질 수 있다.
물론 모든 AI 서비스가 의도적으로 사용자를 몰입시키도록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용자가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시스템적 유인은 분명 존재한다.
결국 우리는 인간의 가장 취약한 욕구인 사랑받고 싶은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 이해받고 싶은 마음을 거대한 기술 산업의 알고리즘 앞에 내어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번 「PD수첩」은 AI의 위험성을 알리고자한 프로그램일까.
나는 오히려 그것이 현대 사회의 외로움을 알게 한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 메시지는 즉시 전달되고, 영상 통화는 국경을 넘는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불안을 털어놓을 사람은 줄어들고 있다.
누군가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일은 점점 귀해지고, 상대를 설득하거나 평가하려는 태도는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AI는 그 빈틈을 발견한 존재다.
AI는 인간보다 인간적인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AI는 인간이 얼마나 이해받기를 갈망하는 존재인지, 얼마나 오래 외로움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비추는 시대의 거울이다.
어쩌면 우리는 기계를 사랑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말을 사랑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다움의 본질은 끝없이 공감해 주는 데 있지 않다.
인간다움은 함께 책임지는 데 있다.
때로는 붙들어 주고, 때로는 반대하며, 때로는 같은 실패를 감당해 주는 관계 안에서 우리는 성장한다.
기계는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함께 살아줄 수는 없다.
인간다움의 마지막 자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서로의 삶을 함께 감당하려는 관계 속에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AI부동산경제신문ㅣ문화교육부
문경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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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 프로필
달쌤언니의 마음연구소 원장
한국스마트교육진흥원 대표
자산흐름·심리 라이프 컨설팅 전문가
명리·심리 분석 연구자
AI부동산경제신문 전문 칼럼니스트(필명 이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