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가 직접 전화하면 거래가 진행됐고 대표가 바쁘면 영업도 함께 늦어졌다. 거래처 연락처는 휴대전화에 있었지만 언제 무엇을 제안했고 상대방이 어떤 조건을 요청했는지는 대표의 기억에 의존했다. 대표 개인의 인맥으로 시작한 거래를 회사의 매출 구조로 만들려면 고객과 거래처 정보를 연락처가 아니라 영업 과정으로 기록해야 한다.
대표가 움직일 때만 거래가 움직였다
사업 초기에는 대표가 가장 좋은 영업사원일 수 있다. 제품과 서비스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가격과 조건을 현장에서 바로 결정할 수도 있다.
기존 인맥을 통해 첫 거래처를 확보하고, 소개받은 사람에게 직접 연락해 계약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고객에게 문제가 생기면 대표가 직접 전화해 해결하면서 관계를 이어간다.
초기에는 이런 방식이 빠르다. 문제는 거래처가 늘어난 뒤에도 같은 방식이 계속될 때 나타난다.
대표가 제품 개발이나 자금 문제로 바빠지면 후속 연락이 늦어진다. 지난달 상담한 거래처에 다시 연락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리고, 견적서를 보낸 고객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도 기억을 더듬어 확인한다.
직원에게 영업을 맡기려고 해도 전달할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
“이 업체는 내가 오래 아는 곳입니다.”
“지난번에 어느 정도 이야기가 됐습니다.”
“조만간 연락하면 될 겁니다.”
대표에게는 충분한 설명일 수 있지만 새 담당자는 지금 거래가 어느 단계인지 알기 어렵다.
대표가 영업을 잘하는 것과 회사에 영업 구조가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연락처가 있다고 고객을 관리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의 휴대전화에는 수백 개의 거래처 연락처가 저장돼 있을 수 있다. 명함과 이메일 주소, 회사명도 별도로 관리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연락처만으로는 현재 영업 상황을 설명하기 어렵다.
처음 어떻게 알게 된 업체인지, 어떤 상품에 관심을 보였는지, 마지막으로 언제 연락했는지, 견적을 보냈는지, 상대방이 어떤 조건을 검토하고 있는지까지 알아야 다음 행동을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세 곳의 거래처라도 상황은 전혀 다를 수 있다. 한 곳은 첫 상담 뒤 회사소개서를 요청했고, 다른 곳은 견적서를 받아 내부 검토 중이며, 또 다른 곳은 가격 조건이 맞지 않아 거래가 보류됐을 수 있다.
연락처만 보면 모두 같은 ‘영업 대상’이지만 진행 상황을 기록하면 어디에 먼저 시간을 써야 하는지가 달라진다.
영업관리는 고객 이름을 많이 보유하는 일이 아니다.
각 고객과 지금 어디까지 이야기했고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회사가 확인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영업 단계와 다음 행동을 한 표에서 관리한다
대표의 기억에 있는 영업정보를 회사의 기록으로 바꾸려면 복잡한 시스템부터 도입할 필요는 없다.
우리 회사의 거래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먼저 정하면 된다.
예를 들어 기업 간 거래라면 다음과 같이 단순하게 나눌 수 있다.
접촉 → 상담 → 제안·견적 → 검토 → 계약 → 거래·후속관리
업종에 따라 샘플 제공이나 시범 운영, 입찰, 내부 심사 등이 추가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모든 회사가 같은 단계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회사가 실제로 사용하는 영업 흐름을 정하는 것이다.
그다음 거래처마다 현재 단계와 최근 대화, 다음 행동을 한 표에 기록한다.
항목 | 기록할 내용 |
|---|---|
거래처·담당자 | 누구와 연락하고 있는가 |
요구·관심 | 상대방은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
현재 단계 | 접촉·상담·견적·검토·계약·거래 중 어디인가 |
최근 내용 | 마지막으로 무엇을 협의했는가 |
주요 조건 | 가격·납기·수량 등 확인할 내용은 무엇인가 |
다음 행동 | 누가 언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
대표 판단 | 대표가 결정해야 할 가격·계약·예외 조건은 무엇인가 |
이 표에는 과거 상담 기록과 현재 상태, 앞으로 할 일이 함께 들어 있다. 따라서 상담 내용을 따로 길게 기록하고 다시 고객 상태표를 만드는 일을 줄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항목은 ‘다음 행동’이다.
상담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더라도 다음 연락 시점이 정해지지 않으면 영업은 쉽게 멈춘다. 견적서를 보냈다면 언제 결과를 확인할 것인지, 추가 자료를 요청받았다면 누가 언제 보낼 것인지까지 남겨야 한다.
영업 기록은 지난 대화를 보관하기 위한 일지가 아니다.
다음 행동이 사라지지 않도록 만드는 업무 기록이다.
대표의 관계를 회사의 관계로 바꾼다
대표가 오랫동안 알고 지낸 거래처는 회사의 중요한 거래 기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거래처 담당자는 대표의 개인 휴대전화로만 연락하고, 과거 가격과 계약조건은 대표만 알고 있으며, 중요한 협의도 개인 메신저에서 이루어진다면 관계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대표 개인에게 묶여 있다.
대표가 계속 거래처와 관계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다만 직원이 업무를 이어받아야 할 때 과거 견적과 계약조건, 주요 요청사항과 문제 처리 기록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담당자가 바뀌면 새로운 담당자를 거래처에 소개하고, 기존 협의 내용과 앞으로 해야 할 일을 함께 넘긴다. 대표의 개인 연락수단에서 이루어진 중요한 업무 협의도 필요한 범위에서 회사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
그래야 대표가 회의나 출장으로 자리를 비워도 거래처가 처음부터 같은 내용을 다시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대표의 인맥이 회사의 관계로 바뀐다는 것은 대표가 거래처에서 빠진다는 뜻이 아니다.
대표가 없어도 회사가 이전 거래의 맥락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매출만 보지 말고 어느 단계에서 멈췄는지 본다
매출은 영업의 최종 결과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매출이 줄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알기 어렵다.
새로운 고객을 거의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상담은 많았지만 견적까지 이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견적은 충분히 보냈지만 계약으로 연결되지 않았거나, 기존 거래처의 주문이 줄었을 수도 있다.
따라서 대표는 모든 영업 숫자를 관리하기보다 어느 단계에서 고객이 많이 멈추고 있는지 확인하는 편이 실용적이다.
신규 접촉은 꾸준한데 상담이 줄었다면 첫 제안이나 고객 선별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견적은 많이 나가는데 계약이 줄었다면 가격과 납기, 제안 내용과 후속 연락을 확인할 수 있다.
기존 거래처의 주문이 감소한다면 신규 고객을 늘리기 전에 거래가 줄어든 이유를 확인할 필요도 있다.
영업 숫자를 보는 목적은 직원에게 더 많은 계약을 요구하는 데 있지 않다.
대표가 “영업이 잘 안 된다”는 막연한 판단에서 벗어나 어느 과정에서 거래가 끊기는지를 확인하는 데 있다.
영업회의에서는 거래처별 다음 행동을 정한다
영업회의도 같은 기준으로 단순하게 만들 수 있다.
“이번 달에는 영업을 더 열심히 합시다”라고 말하는 대신 현재 진행 중인 주요 거래처를 보면서 다음 행동을 확인한다.
견적을 보낸 업체에는 언제 다시 연락할 것인지, 계약 검토가 오래 걸리는 곳에는 어떤 자료를 추가로 보낼 것인지, 최근 주문이 줄어든 기존 거래처에는 누가 상황을 확인할 것인지 정한다.
대표가 모든 거래처의 세부 업무를 직접 결정할 필요는 없다.
직원이 정해진 기준에 따라 상담과 후속 연락을 진행하고, 가격이나 중요한 계약조건처럼 대표 판단이 필요한 사안만 보고하도록 나눌 수 있다.
6편에서 다룬 권한 위임이 영업에서도 적용되는 셈이다.
대표의 역할은 모든 영업전화를 직접 하는 데서 조금씩 벗어나 어떤 고객에게 어떤 조건으로 거래할 것인지 중요한 기준과 예외를 판단하는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다.
고객정보는 회사에 남기되 필요한 범위에서 관리한다
영업정보를 회사 기록으로 만든다고 가능한 모든 고객정보를 모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거래를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먼저 정해야 한다.
기업 간 거래라면 회사명과 업무 담당자, 업무용 연락처, 상담과 계약 진행 내용 등이 필요할 수 있다. 개인 고객의 정보를 수집·이용한다면 그 목적과 범위, 보관과 접근 권한 등을 관련 기준에 맞춰 별도로 관리해야 한다.
대표 개인 휴대전화와 메신저에 업무 연락처와 거래 내용이 섞여 있으면 담당자가 바뀔 때 회사가 어떤 정보를 이어받아야 하는지도 불분명해질 수 있다.
영업정보를 회사의 자산으로 만든다는 것은 고객정보를 많이 모으는 일이 아니다.
거래에 필요한 정보를 적절하게 관리하면서 고객과 나눈 업무의 맥락을 회사에 남기는 것이다.
담당자가 바뀌어도 고객이 같은 설명을 반복하지 않게 한다
영업 담당자가 바뀌었을 때 고객이 가장 먼저 체감하는 것은 회사의 인수인계 수준일 수 있다.
“지난번 담당자에게 이미 설명했습니다.”
“견적도 받았고 조건도 이야기했습니다.”
“그 내용으로 진행하기로 했는데요.”
새 담당자가 이전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면 고객은 회사 내부의 관리 문제를 직접 경험하게 된다.
담당자가 바뀌어도 과거 상담과 견적, 계약조건과 중요한 요청사항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10편에서 회사 파일과 계정을 개인에게 맡기지 말아야 한다고 살펴봤다면, 영업에서는 고객과 나눈 대화와 거래의 맥락도 개인에게만 남겨서는 안 된다.
고객은 특정 담당자와 대화하더라도 거래 관계는 회사와 이어진다.
따라서 사람이 바뀌어도 이전 대화의 맥락이 이어져야 한다.
이번 주에는 주요 거래처 10곳만 정리한다
모든 과거 명함과 연락처를 한꺼번에 정리하려고 하면 영업관리 자체가 큰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
현재 회사 매출이나 향후 거래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큰 거래처 10곳부터 시작하면 된다.
앞에서 만든 영업관리표에 거래처와 담당자, 현재 단계, 최근 협의 내용과 다음 행동을 적는다.
그리고 세 가지만 확인한다.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가.
마지막으로 무엇을 이야기했는가.
다음에 누가 언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세 질문에 대표와 담당 직원이 비슷하게 답할 수 있다면 영업정보가 대표의 기억에서 회사의 기록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반대로 대표만 답할 수 있는 거래처가 많다면 어떤 내용을 먼저 회사에 남겨야 하는지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생존경영 포인트
대표의 인맥과 영업력은 사업 초기의 중요한 자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거래처 정보와 상담 내용, 가격 조건과 다음 행동이 대표 개인의 기억에만 남아 있다면 회사가 커질수록 대표는 계속 모든 영업 과정에 관여해야 한다.
영업관리의 출발점은 복잡한 시스템이 아니다.
거래처마다 현재 단계, 최근 협의 내용, 다음 행동을 남기는 것이다.
이 기록이 있으면 대표가 직접 영업하지 않는 날에도 직원이 견적을 보내고 후속 연락을 이어갈 수 있다. 담당자가 바뀌더라도 고객에게 이전 대화를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달라고 요구하는 상황도 줄일 수 있다.
매출이 줄었을 때도 “영업을 더 해야 한다”는 결론부터 내리는 대신 접촉과 상담, 견적, 계약 가운데 어느 단계에서 거래가 끊기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영업 시스템을 만든다는 것은 사람의 관계를 기계적으로 관리하는 일이 아니다.
대표와 직원이 쌓은 관계의 맥락을 회사가 이어갈 수 있도록 필요한 내용을 기록하고, 다음 행동이 사라지지 않게 만드는 일이다.
대표가 고객을 알고 있는 회사에서 회사가 고객을 알고 있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다음 편에서는 고객이나 거래처의 불만이 온라인 후기와 게시글, 거래 분쟁처럼 공개적인 문제로 번졌을 때 회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살펴본다. 문제가 발생한 직후 무엇을 먼저 확인해야 하는지, 내부 보고와 사실 확인, 외부 설명의 순서를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도 함께 다룬다.




